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올림픽 총회에서, 

1988년 올림픽 개최국으로 대한민국 서울이 선정되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위상이 높아질 기회가 생겼으며, 

올림픽 개최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대우 로얄시리즈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다. 

그러자, 1983년에 현대자동차는 중형차인 스텔라를 내놓았지만,

스텔라는 초반에 잘 팔리는 듯 했으나, 엔진과열 등으로 인한 결함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현대자동차는 스텔라를 다듬어 고급화한 차를 내놓게 되는데... 


1. 비운의 선조 - 소나타(Y)

(1985.11~1987.12)

1985년, 가수 이선희의 노래인 <J에게>가 가요계를 강타할 무렵, 

중형차 시장은 스텔라와 로얄 시리즈의 대결이었다. 

스텔라만으로 역부족했던 현대차는 스텔라를 고급화시킨 결과, 

1985년 11월, 마침내 소나타를 시장에 내놓게 되었다. 

원조는 현대 스텔라인데, 실제로 스텔라 수출형이 이 모습으로 해외 각국으로 수출을 나갔다고 한다. 

이 디자인의 원조는 이탈디자인의 수장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만든 스텔라이기 때문에, 

스텔라와 큰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다만, 투톤컬러 등을 통해 스텔라와 차별화시켰다는 걸 부각시켰다.

멀리서 봐도 소나타가 아닌 스텔라로 착각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측면부는 역시나 스텔라와 동일한 맥락이다. 

스텔라와 한 궤를 같이했던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각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사실, 5단 수동변속기는 이 녀석이 원조가 아니라, 스텔라 프리마가 원조라 할 수 있다. 

왜? 스텔라 프리마에 처음으로 5단 기어를 썼고, 그 다음에 나온 스텔라 CXL 역시 5단 기어를 사용했다. 

5단 수동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5-SPEED"라는 레터링을 별도로 팬더 부위에 부착했다. 

소나타의 타이어는 175/70R13 사이즈인데, 보통 이 타이어 사이즈는 경차에서 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1985년 당시에 저 13인치 알로이 휠과 타이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당시에 저 13인치 휠만 달아도 고급스러워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쏘나타가 18인치까지 올라온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실내 역시 스텔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0cc 모델에는 크루즈 컨트롤도 처음으로 적용했었고, 

파워 스티어링 휠과 뒷좌석 파워시트도 적용할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다만, 사진 속의 소나타는 1,800cc였기 때문에 스텔라와 다르지 않았다. 

실내는 후륜구동 특성상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다만, 시트 착좌감은 80년대 차 답게 푹신하지 않았을까 싶다. 

앰프도 대용량의 것을 사용했다. 

후면부 역시 스텔라와 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후기형 스텔라가 소나타의 것과 같은 테일램프를 사용했기 때문.

어쩌면, 쏘나타 2와 마르샤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지 않나 싶다. 

해당 차량이 1,800cc였기 때문에, 1985년 초기형에는 1800이라는 레터링을 사용했으나, 

후기형으로 넘어오면서 1.8이라는 레터링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1세대 소나타의 파워트레인은 시리우스 I4 FBC 1,795cc SOHC 엔진(100마력, 15.0kg.m)과 

시리우스  I4 FBC 1,997cc SOHC 엔진(110마력, 16.7kg.m) 2가지와 

5단 수동과 자동 4단 변속기 중 하나를 선택해서 조합할 수 있었다. 

 

한편, 소나타는 이듬해, 경쟁사로부터 "소(牛)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과 놀림을 받으며, 

엄청난 수모를 겪어왔고, 그 결과 "쏘나타"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쏘나타(Y)는 대우 로얄프린스에 밀려 

1987년 12월,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쏘나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후륜구동 중형차였고, 

영화배우 신성일(강신성일) 옹께서 첫 번째로 계약했던 차이기도 하다. 

비록, 1세대 소나타는 조용히 사라졌지만, 

쏘나타 역사를 처음으로 만든 차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진 속의 쏘나타는 1987년 후기형 차량이며, 

실제로 전주에서 운행 중이었던 차량이다. 


↓CF



2. 베스트셀러 카의 여정 시작 - 쏘나타(Y2)

(1988.06~1993.05)


1세대 소나타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지자, 

현대자동차는 로얄시리즈에게 복수하기 위해 새로운 중형차 개발에 들어간다. 

프로젝트명 Y2. 녀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스타일링을 다시 조르제토 쥬지아로에게 맡겼으며, 

현대자동차 사내에서 공모전을 통해 이름을 결정하기로 했다. 

새 중형승용차 이름을 두고 고민에 빠졌던 현대자동차. 

여러 이름 중에 "쏘나타"라는 이름이 들어가있었는데, 

해당 차량이 수출전략형이었기 때문에, 해외 딜러 사의 의견 역시 필요했다. 

그 결과, 미국 딜러들의 압도적인 몰표로 "쏘나타"라는 이름이 결정되었다. 

사실, 소나타라는 이름이 실패한 이름이었지만, 다시 결정된 것은 

본격적인 국민 베스트셀러 카 역사의 시작을 알리지 않았나 싶다. 


결국 1988년 6월, 현대에서 마침내 2세대 쏘나타를 내놓았다. 

1988년에 첫 선을 보인 2세대 쏘나타는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차로, 

일명 "각 그랜저"라 불리는 1세대 그랜저(L)의 메커니즘을 대거 채용함과 동시에 

구동방식도 전륜구동으로 바뀌어 완전히 새로운 중형차로 탈바꿈했다. 

디자인은 1세대와 달리 곡선을 가미한 부드러운 인상으로 바뀌어 1세대와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 

이는, 현대자동차가 대우 로얄시리즈에 겪은 온갖 수모를 갚아주겠다는 복수심을 불태운 결과이며, 

얼마나 정성들여 준비한 차인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측면부는 에어로 다이나믹 스타일이 적용되어 1세대와 달리 덜 각진 모습을 보였다. 

공기저항은 cd계수 0.32로 1세대보다 훨씬 더 진보하여 주행성능이 향상되었다.

타이어는 195/70SR14 사이즈를 채용했으며, 

알로이 휠도 14인치로 더 커졌다. 

대쉬보드는 ㄱ자 형태를 갖추어 운전자 중심으로 설계되었으며, 

최고급 모델에는 디지털 계기판을 채용하기도 했다. 

스티어링 휠 모양을 봐서는 해당 차량이 Y2 초기형이 아닌, 

연식변경 차량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위 차량은 5단 수동변속기가 장착되어있다.

실내 공간은 당시 경쟁차량이었던 콩코드, 로얄 프린스와 달리 동급 최대 공간을 가지고 있어 

이 차가 얼마나 넉넉한 차였는 지를 보여준다. 

해당 차량은 2.0 GLSi 모델로, 2.0의 단일 트림이다. 


쏘나타는 출시되자마자 단숨에 대우 로얄시리즈를 제치고 선두에 오르게 되고, 

이것은 곧 국민 베스트셀러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렸다. 

당시 차값은 1.8은 905만원, 2.0은 1,206만원이었다. 

이후,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형식으로, 

시리우스 I4 1.8 MPI SOHC(1,795cc, 105마력, 15.4kg.m), 

I4 2.0 MPI SOHC(1,997cc, 120마력(후에 111마력, 16.2kg.m) 2가지 엔진을 사용했다. 

1990년 8월에는 시리우스 I4 2.4 MPI SOHC(2,351cc, 123마력, 19.9kg.m) 엔진을 장착한 

2,400cc를 내놓았으나, 극소량에 불과한 판매량으로 1991년 2월에 페이스리프트 되면서 단종되었다. 

지금은 2.4를 보려면 보배드림의 회원이신 "XLR8"(일명 엑소장님)님의 애마로 볼 수 있다. 

수출용으로는 그랜저에 사용하는 싸이클론 V6 3.0 MPI SOHC(2,972cc,146마력,23.3kg.m) 엔진을 달기도 했다.

1991년 2월에 한 차례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으며, 이 때 처음으로 현대자동차의 새 CI가 적용되었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둥글게 다듬었으며, 전장을 조금 더 늘렸다. 

이 때 처음으로 DOHC 엔진을 채용하게 되었는데, 

시리우스 I4 2.0 MPI DOHC(1,997cc,137마력,17.7kg.m) 엔진으로, 

이 엔진을 장착한 모델이 처음에는 2.0 DOHC였지만, 

이후 GOLD 트림으로 대체되었다. 이 떄 선보인 GOLD 트림에는 

대한민국 중형차 최초로 ABS 브레이크를 채용하기도 했다. 

1993년 5월에 후속모델인 Y3. 즉, 쏘나타 2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되었다. 

하지만, 쏘나타 2세대에 대한 의의가 몇 개 있는데, 

최초의 고배기량 엔진을 내수시장에 선보인 쏘나타이자, 

역대 쏘나타 중 최초의 수출전략형 승용차였으며, 

처음으로 캐나다 브로몽 공장에서 생산됬던 차다. 

하지만, 캐나다 브로몽에 위치한 현대차 공장은 1993년 문을 닫고 만다.  


Y2 초기형 CF↓


Y2 페이스리프트 CF↓


3. 여전히 사랑받는 세대 - 쏘나타 II(Y3)

(1993.05~1996.02)

1993년, 대한민국은 "김영삼 정부"의 수립과 함께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 본격적인 일제 강점기의 잔재들을 청산해나가기 시작한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후속작인 "Y3"의 개발을 마쳤고, 

그 해 5월, 3번째 쏘나타. 즉 쏘나타 II가 첫 선을 보였다. 

1993년 5월 14일에 출시된 쏘나타 II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전면부를 잘 보면, 쏘나타 II가 얼마나 수려한 차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쏘나타 2는 역대 쏘나타 중 처음으로 폴딩형 아웃사이드 미러를 적용하였는데, 

이는 주차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처음으로 적용한 사례 되시겠다.

클로즈업.

헤드램프가 더욱 길쭉하고 수려해졌다. 

예전 세대에 비해 더욱 더 길쭉해진 모습을 보인다. 

디자인도 이전세대에 비해 훨씬 더 세련된 에어로 다이나믹 스타일로 거듭났다. 

전체적으로 보면 측면부 역시 세련된 모습이다.

타이어도 195/70R14 사이즈를 사용했고, 14인치 알로이 휠 디자인이 전작에 비해 스포크가 줄었다.

실내 역시 전작에 비해 더욱 더 세련되게 바뀌었으며, 

센터페시아는 ㄱ자 형태이지만 더 부드러워졌다.

게다가, 에어컨도 신냉매형 에어컨이 적용되었다. 

 또, 안전사양으로 운전석 에어백을 적용하였는데, 

1995년식부터는 조수석 에어백도 함께 적용되었다. 

해당 차량은 1995년 후반에 출하된 2.0 GLS 모델로, 

운전석 에어백이 기본 장착되어있는 끝물 모델이다. 

현대차의 주특기인 광활한 실내공간은 빼놓을 수 없는 감초이다.

그리고, 쏘나타 II의 특징 중 하나가, 1.8과 2.0의 직물시트 패턴이 다르다는 것인데, 

1.8같은 경우에는 약간 하얀 체크타입이 보이는 것이며, 2.0은 조금 더 고급스러운 타입이다. 

중형차로는 공기청정기도 갖추고 있었다. 

후면부는 이전 쏘나타보다 더욱 빵빵한 궁딩이를 자랑하며, 

포근하게 감싸듯한 테일램프는 소비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또, 노출형 듀얼타입 머플러를 적용하여 조금 더 고급스러워졌다. 


쏘나타 II는 1994년과 1995년 연속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면서 3년이 채 안되어 60만대가 팔려나갈 정도로 

그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그 결과, 역대 쏘나타 중 여전히 큰 사랑을 받는 쏘나타로 대중들의 기억 속에 자리매김했다.

1995년 8월에는 골든팩 모델을 출시하였는데, 금장 엠블럼과 수출용 휠로 차별화하였다. 

한 때, 5달 전인 3월에 이 차체를 사용하여 고급화시킨 준대형 세단 마르샤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파워트레인은 시리우스 I4 1.8 MPI SOHC(1,796cc, 110마력,16.5kg.m), 시리우스 I4 1.8 MPI DOHC(1,836cc, 135마력, 17.5kg.m), 

시리우스 I4 2.0 MPI SOHC(1,997cc,115마력,18.1kg.m), 시리우스 I4 2.0 MPI DOHC(1,997cc,146마력, 19.2kg.m)으로, 

배기량만 2가지일 뿐, 사실 엔진 선택의 폭이 넓었다. 

여기에 5단 수동과 4단 자동을 조합하는데, 4단 자동변속기는 미쓰비시에서 공수한 

F4A33 기종으로, 이후 KM175로 바뀌었다.


1996년 2월, 쏘나타 II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치게 된다. 


↓CF


4. 욕 먹었지만 그래도 잘 나갔던 차 - 쏘나타 III(Y3 F/L)

(1996.02~1998.07)


1996년, 가수 H.O.T와 터보가 가요계를 강타했고,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도 있었다.

이 시기에 현대자동차는 막강한 경쟁자인 기아 크레도스와 대우 프린스를 대적하기 위해 

과감히 Y3을 손보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태어난 녀석이, 1996년 2월에 런칭한 쏘나타 III.

쏘나타 III는 쏘나타 II에 비해 스타일링은 별로였지만, 사실은 잘 나온 차였다.

근데 정작 욕 먹은 부위는 저 헤드라이트가 남자 거기(곧........응?)닮았다고 

여성 단체에서 난리 부르스를 췄었다.

쏘나타 II와 다르지 않은 부분은 역시나 앞 뒤, 휠 빼고 다. 

타이어 사이즈는 페이스리프트 전의 쏘2와 동일한 195/70R14인데, 

휠이 바람개비로 바뀐 거 빼면, 뭐 사이즈는 변화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 

원래 저 휠은 2.0 DOHC, 2.0 GLS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휠이다.

실내는 쏘나타 II와 다른 점을 찾기 힘들지만, 해당 전시 모델이 2.0 TX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 녀석이 택시 모델로 설계되었다가 연구소에 있었지 않나 싶다. 

시트는 가죽시트다 보니 고급스러운 것도 있지만, 뭔가 씌운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실내 공간은 여전히 넓더군요. 

뒷모습은 포근했던 쏘2와 달리 쏘3은 테일램프를 날렵하게 바꾸었다. 

그 덕분에 트렁크는 트렁크대로, 테일램프는 테일램프대로. 


쏘나타 III가 욕 먹는데도 불구하고 1996~1997년 중형차 부문에서 엄청 팔렸었다.

1997년도에 현대자동차 창립 30주년 스페셜 모델이 나오기도 했었으며, 

후기형 모델은 라디에이터 그릴이 세로형이 아닌 가로형.


당시 쏘나타 III의 파워트레인은 쏘나타 II의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거.


1998년 3월에 자가용 쏘3은 단종되고, 영업용은 99년에도 생산했다는 설이 있음.


↓CF


5. Dream Technology - EF SONATA

(전기형 : 1998.03.17~2001.01.09, 뉴 EF 쏘나타 : 2001.01.10~2004.08.31)


1997년, 기업들의 연속 부도와 함께, IMF 위기가 터지면서 

대한민국은 불안감에 떨었다. 

사업으로 흥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쫄딱 망하면서 

길거리의 노숙자로도 내몰리기도 했던 암울한 시절이 1998년.

이 어려운 시기에 현대는 새로운 쏘나타를 내놓았는데, 

프로젝트명 EF. 즉, EF SONATA 되시겠다. 

1998년 3월 17일에 런칭한 EF 쏘나타는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컨셉인 뉴 에지 스타일을 적용하면서 

현대차 디자인이 기존에 비해 날카로워졌음을 알렸다. 그리고, 전면부의 인상은 기존 남성적인 모습에서 

여성적인 모습으로 둥글둥글하게 바뀌었다. 

역대 쏘나타 중 최초로 진주색 컬러가 적용되기도 했다.

EF쏘나타는 내수 시장에서 초반에는 마티즈 때문에 죽을 쒔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승승장구했던 모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차량의 라이트는 시그널 등이 호박색으로 되어있는 2001년형.

거의 최후기형 모델이라 보면 된다. 

근데, 좀 에러인 게, 그릴은 1998~1999년에 사용한 십자형 그릴이라니... 

측면부를 잘 보면, 기존 쏘나타 3에 비해 차체가 더 커졌다는 걸 보여주며, 

스타일링도 훨씬 진보했다는 것 역시 보여주었다. 

1998년 EF쏘나타의 데뷔는 거의 충격적이었다.

휠 사이즈도 전작에 비해 더 커졌다. 

205/70R15 사이즈로 한 사이즈 더 커졌으며, 

심지어 알로이 휠도 15인치로 더 커졌다. 

해당 알로이 휠은 2.0 GOLD와 2.5 V6 GOLD의 전매특허이자, 기본사양이었다.

또한,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적용하여 승차감을 더욱 향상시켰다. 

실내가 좀 에러인 이유가 사실, 저 대쉬보드와 계기판은 옵티마에 사용된 그것이자, 

2000년 맨 마지막 버전인 2001년형의 것이다. 

아무래도 CVT 연구용 차량이 아니었나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역대 쏘나타들과 달리, 녀석은 베이지색 인테리어를 갖고 있다. 

후면부 역시 동글동글한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진짜 여성적이다. 

붕뜬 모습보다는, 조금 허술해보이기도 하다. 


EF쏘나타는 1998년,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합병시킨 후에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개발중이었던 "MG"를 기아 크레도스 후속으로 하여 

기아차에 선물로 줬고, 자기네는 새로 개발했다고 한다. 

그 결과 2001년 1월에 나온 뉴 EF 쏘나타는 이것보다 조금 더 커졌다. 

2002년 월드컵 스페셜 에디션으로도 나왔었다. 

당시 EF 쏘나타는 시리우스 I4 1.8 DOHC 133마력, 시리우스 I4 2.0 DOHC 147마력. 

이 두 가지 엔진과 최초 독자개발 엔진이자, 역대 쏘나타 최초의 V6 엔진이라 불리는 

델타 V6 2.5 DOHC 175마력 엔진 등 선택의 폭이 넓었다. 

여기에 HIVEC 인공지능형 4단 자동변속기와 5단 수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었고, 

2000년에는 CVT 무단변속기를 선택 가능했다. 

미쓰비시의 산물로 불리웠던 시리우스 엔진은 EF쏘나타가 마지막이었다. 


↓CF



6. 명차의 새로운 경험 - 쏘나타(NF)

(2004.09.01~2009.08.31)


2004년, 점점 국내 자동차 시장에 수입차들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어코드의 등장에 위협을 느끼게 된 현대자동차는 NF 프로젝트를 마치게 된다. 

2004년 9월, 마침내 심장까지 100%인 진정한 독자개발 쏘나타가 등장했다. 

품질 면에서도 크게 개선한 5세대 쏘나타.

둥글둥글했던 EF쏘나타와 달리, 엣지를 부여하면서 더욱 날렵한 인상을 가지고 데뷔했다. 

높이도 EF에 비해 조금 더 커졌다. 

측면부는 여느 쏘나타보다 더 고급스러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디자인 면에서도 곳곳에 엣지를 부여했다. 

타이어 사이즈도 215/60R16으로 사이즈가 커졌으며, F24에는 225/50R17 타이어와 알로이 휠이 추가되었다. 

대쉬보드는 기존 EF와 달리 가로배치형 타입으로 바뀌어 고급화하였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오디오 조작이 불편했다는 거.

실내는 더욱 더 넓어졌다.

2열 공간도 내가 택시로 타봐서 아는데, 장시간 타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던 차였다. 

뒷면은 어코드와 비슷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EF쏘나타보다 더욱 더 고급스럽게 설계되었다. 


3년 10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만들어진 5세대 쏘나타의 파워트레인은 

순수 독자개발 엔진인 쎄타[Θ]-I4 2.0 MPI DOHC VVT(1,998cc,144PS,19.1kg.m),

쎄타[Θ]-I4 2.4 MPI DOHC VVT(2,359cc,166PS,23.0kg.m)을 먼저 장착했으며, 

이듬해인 2005년 6월에는 람다(λ)-V6 3.3 MPI DOHC VVT(3,342cc,233PS,31.0kg.m)을 장착하기도 했는데, 

사실 V33의 개체 수는 미미하다 볼 수 있다. 

변속기는 자동 5단(2.4, 3.3), 자동 4단(2.0), 수동 5단 등 3가지를 사용했다.

이듬해인 2006년 2월에는 디젤 엔진을 장착한 쏘나타 VGT를 내놓았지만, 마케팅이 신통치않아서 개체 수가 얼마 없었다고.

장동건이 CF 모델이기도 했고, 일본에는 처음이자 마지막 쏘나타였던데다, CF 모델이 배용준이었다. 

2007년 11월에 부분변경 모델이 출시되었고, 2009년까지 생산되었다. 

시리우스 엔진이라는 긴 사골에서 벗어나, 새로운 독자개발 엔진인 쎄타엔진을 얹은 역대 쏘나타 중 첫 국산화 엔진을 쓴 쏘나타라 할 수 있으며, 

2005년, 미국 알라바마 주 몽고메리에 알라바마 공장이 설립되어 처음 생산된 차이기도 하다. 


↓CF


7. Art of Technology - SONATA(YF)

(2009.09~2014.03)


역대 쏘나타 중 가장 섹시한 쏘나타이자, 앞선 디자인을 내세웠던 쏘나타이기도 한 6세대 쏘나타.


2009년 9월에 런칭한 6세대 쏘나타(YF)는 당시에는 정말 한참 앞서가는 디자인이었다. 

난을 형상화하다 보니 곳곳에 한국적인 라인이 눈에 띈다. 가히 아름답다. 

그러나, 저 삼엽충 타입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호불호 갈리는 원인이 되었는데, 

미국에서는 끝까지 썼었는데, 국내에서는 2011년식까지 사용.

측면부는 마치 4도어 스포츠 쿠페를 보는 듯한 디자인으로 뒷좌석 헤드룸을 포기할 정도였다. 

진짜, 역대 쏘나타 중 엄청 섹시한 쏘나타라는 말이 맞다. 

게다가, 저 사이드 라인은 난을 형상화 시킨 모습으로, 

당시 현대차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가 반영되었다. 

타이어 사이즈는 또 커졌다. 

205/65R16 사이즈에 16인치 알로이 휠이 적용되었고, 

윗급 모델에는 215/55R17 타이어에 17인치 알로이 휠, 

최상위 모델에는 225/45R18 타이어와 18인치 알로이 휠을 사용했다. 

특히, 16인치 휠은 쏘나타의 디자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휠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대쉬보드는 Y자 타입으로 미래지향형 스타일이다. 

해당 모델이 Y20 GRAND. 거의 기본 모델이다. 

근데, 이 전시차에 한 가지 특이 사항이 있었는데.

바로 6단 수동변속기였다. 

즉, 이 쏘나타가 자가용으로는 마지막 수동변속기 장착차라는 얘기다. 

요즘 쏘나타가 전 모델 자동변속기 기본인 점을 감안한다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헤드룸 빼면 실내공간은 여전히 넓다.

스포츠 쿠페처럼 보이는 스타일이면서도, 뒷모습은 너무나도 예뻤다. 

다만, 스포츠 중형세단 답게 듀얼 머플러를 달아준다면 더 이쁘지 않았을까?


쏘나타가 처음 데뷔했을 때는 2.0 쎄타 165마력 엔진을 사용했었는데, 

2010년 1월에는 2.4 쎄타 GDI 201마력 엔진을 추가했으며, 

2011년도에는 쎄타 2.0 터보 GDI 271마력 엔진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 때, 쏘나타의 가지치기 모델로 하이브리드까지 더해졌었다. 

근데, 6세대 쏘나타는 배다른 형제인 기아 K5한테 겁나 발렸었다. 

디자인이 호불호 갈렸던데다, K5 디자인이 엄청 잘 나온 케이스였기 때문.

이후, 1% 할부 극약처방을 통해 다시 왕좌에 올랐지만, 예전만하지 않았다. 


왜? 형인 그랜저가 엄청 팔렸거든. 

2012년도에 한 차례 부분 변경을 거쳤고, 

2014년 3월 24일 결국 단종. 

영업용은 아직도 판매 중이라, 

지금은 법인택시에서도 YF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거. 


↓CF


8. 본질로부터 - 쏘나타(LF)


2014년 3월 24일, 마침내 7세대 쏘나타가 데뷔한다. 


전면부는 현대차의 디자인 철학.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이 반영되어 YF에 비해 더욱 점잖아진 모습입니다. 

측면부도 YF보다 라인을 절제하여 폭 넓은 나이층을 소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18인치 휠은 235/45R18 타이어와 조합한다.  

대쉬보드는 아우디처럼 보이지만, 최근 제네시스의 추세를 따라 T자형에 운전자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뒷좌석은 여전히 넓다. 현대의 주특기인 실내공간 넓히기. 

후면부는 누가보면 K5인 줄 알겠다. 아니, K7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잘 다듬은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초고장력 강판 51%로 안전성을 강화하였고, 

엔진 출력을 하향시킴과 동시에 연비도 하락했다. 

그래도, 본질을 살린 쏘나타라 할 수 있겠다.

쏘나타는 이번 세대에 와서 많이 부진했고, 

결국, 하이브리드 모델을 더했고, 최근에는 터보까지 더 했다. 

현재 판매 중인 쏘나타이기에 말은 필요없다. 


이렇게 쏘나타는 30살을 맞이했다. 

30년의 세월 동안 7번이나 체인지했던 쏘나타.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귀추가 주목된다. 


↓CF


이상 쏘나타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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